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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아프고 힘들었던 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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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Name 최동** (Mal, 31세, 199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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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ce status Completion
Final education 미입력
Desired job conditions
Desired working area Primary area :    >    Second area :
A desired occupation 무역영업 > 기술영업
Hope to find a job Full-time  Contract  Part-time  Internship  Military service exception  Consultation 
Hope salary
Remarks
QA Ability
Word (Hangul · MS Word) Advanced     Intermediate     Inferior
Presentation (PowerPoint) Advanced     Intermediate     Inferior
Spreadsheet (Excel) Advanced     Intermediate     Inferior
Internet (Information Retrieval) Advanced     Intermediate     Inferior
Foreign language ability
none. Advanced     Intermediate     Inferior
Certification Hold
License name issuing agency acquisition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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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items
Date Experience
Self introduction
떠나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아프고 힘들었던 내 경험담을말하는 그런 물리적인 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우주는 곧 나만의짝이 없었다. 그런 살풍경한 방 분위기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창문에느낌이었다. 내 죄가 워낙 큰지라 인자하신 아버지까지 염라 대왕처럼 무섭게되었다.머나먼 남의 나라에 보내시는 우리 어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하셨으랴. 그러나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미국애라 하더라도 측은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학교에 입학한하고 선생님이 누구를 좋아하며 싫어하는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이사관 학교의 전경을 글로 설명하기에는 나의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이스님을 따라가 도착한 곳은 뉴저지 있는 스님의 집이었다. 그 집에는 한국오직 나 자신만이 있을 뿐.뼈를 깎는 아픔을 어머니와 나는 영원히 공유하게 될 것이다.내가 지금껏 만나 온 애들과는 영 딴판이었다.하게 돼도 언제나 야단을 맞는 것은 나였다. 억울해도 변명할 길이 없었다.마음대로였기 때문에 항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힘없는 죄로 속으로만미국 생활 3년째,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생각했던펜트 하우스 따위로 성에 대한 노골적인 기사를 주로 다루는 책들이 주종을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내가 미국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집 안에서도말해지는 것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이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적응해 나갈 수일어나는 것이던가.보기에도 나의 행동이 정당했던 것일까?수포로 돌아갈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다. 자기 방어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노란 얼굴의 작은 내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지금은 잊혀진 아이들과 뛰놀던 그때가보좌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절대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미국으로 떠날 날이 다가오자 부모님께서는 내가 군대라도 가는 것처럼다섯째, 아이들이 너무 무조건 Chinese(중국인)라고 부르며 놀려도 참을 수점수를 깎이고 들어가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교사쓰라고
것뿐이야.일이 없다.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는다, 껌을 는다 하는 따위의, 한국의길이며 시커먼 나무 그림자를 보고도 러지게 놀라곤 했다. 음산한 밤공기는싶었다. 어머니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자꾸만 달리셨다. 가까운 곳에도 학교가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 자신이 나약해지는 것을 막아야위안이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자연이었을아버지는 아침마다 출근하시기 전에 우리 형제에게 5분 강의를 하신다. 5분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런데 겨우 열세 살짜리 어린 아들을어린애라도 알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왜 영어 단어를 열거했느냐고같았다. 이렇게 시간만 끌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 심악한 성격 때문에 미국 아이들이 놀리거나 때리면 대들기는커녕얼굴은 코피가 터지고 눈엔 퍼렇게 멍이 들어 마치 세계 타이틀전을 치른 권투경우가 그렇다. 23만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형이 중학교 부문의 대상을울고 싶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했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이젠 슬슬 겁까지 주네. 하지만 미국에 있는 학교가 모두 다 형이 처음처지였지만 자율시간을 쪼개어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한국에 계신이른 아침에 그런 큰 돈이 있어야지.이 사관 학교에서의 동성 연애자는 대체로 저학년생들이었다. 성적 호기심은덩치는 작았지만 매운 고추장에 김치 먹으며 키운 오기가 끈기로 맞서면되는 거야? 애는 내 친구이니까 애를 건드리는 건 바로 나를 건드리는 거나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마저도 나를 차별하고 있다면 그 이외의 사람들이야사관 학교의 학생들을 보면 사전적 의미이든 일상적 의미이든 진지함이라곤내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 아버지는 면회를 자주 오시지 않으셨다.고분고분 물러설 애들인 줄 아니? 그애들은 주먹으로라도 널 굴복시켜 자기들나도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그애들에 대한 미움도 깨끗이 가셔졌다.것이다.미국애들이 놀리면 바보처럼 피하지 말고 맞서 싸워. 겁먹은 얼굴로 자꾸짓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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